이순신 흥양수군 800리길 8코스
이순신 흥양수군 800리길 8코스는 풍남항을 출발하여 대통마을, 황촌마을, 구암마을, 정걸장군묘소, 덕흥마을을 경유하여 사덕마을까지 18km이다.

8코스는 조선시대 소흘라량진이 있었던 풍남항을 출발하여 대통마을, 황촌마을 지나 유주산 남쪽 기슭 전망대에 도착하면 가까이에는 거금도 동쪽과 시산도, 형제도, 죽도, 지죽도 남해바다를, 멀리에는 손죽도, 초도, 거문도가 있는 남해바다의 아름다움을 독차지하며 구경할 수 있다.

이어서 구암마을을 지나 정걸장군 묘소에 도착한다. 정걸 장군은 우리나라 전선인 판옥선, 화전, 철익전, 대총통 등 여러 가지 군기를 만든 이로 전해오고,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이순신 조방장을 거쳐 충청수사로 있을 때 권율이 행주에서 싸우다가 화살이 다 되어 큰 곤경에 빠졌는데 그가 화살을 가득 싣고 가서 그것으로 승첩을 얻게 되었다. 이어서 사덕마을에 이르게 된다.
8코스-1 정걸묘소
정걸 장군 묘지는 전남 고흥군 도화면 구암리 산 23-1에 위치해 있다. 정걸 장군 부부와 그의 아들 정연 그리고 손자 정홍록 묘지가 함께 있다.

정걸(丁傑, 1514~1597):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조방장, 충청수사
우리나라 전선인 판옥선(板屋船), 화전(火箭), 철익전(鐵翼箭), 대총통(大銃筒) 등 여러 가지 군기를 만든 이로 전해온다. 본관은 영광, 거주지는 전라남도 흥양(현재의 고흥)으로 정언, 정극인의 후손이요 증참판 숭조의 아들이다.
1544년(중종 39)에 무과에 올랐으며, 1555년(명종 10) 을묘왜변 때 형 준(俊) 찰방과 함께 도순찰사 이준경(李浚慶)의 군관으로 들어가 왜적을 쳐부수고, 1587년(선조 20, 정해)에 부안현감으로 있다가 때마침 함경북도 온성에 오랑캐들이 난을 일으키므로 조정에서 특별히 뽑아 온성부사로 임명하였더니, 역시 가서 큰 공로를 세웠다.
가리포첨사, 남도포만호, 전라좌수사(2회), 전라우수사, 창원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년에 이순신과 함께 부산 해전에 출전하여 공로를 세웠고, 충청수사가 되었을 때 권율이 행주에서 싸우다가 화살이 다 되어 큰 곤경에 빠졌는데 그가 화살을 가득 싣고 가서 그것으로 승첩을 얻게 되었다.
일찍이 어사 이이장이 판옥선이란 것은 그 운용이 어렵다 하여 폐하자고 장계했을 때, 위에서는 그것이 “명장 정걸이 창제한 것이라 폐할 수 없다.”라고 한 일이 있었다. 아들은 영광군수(郡守) 연이고 손자는 낙안군수 홍록(弘錄)인데 아들 정연은 1597년 고창군 흥덕(興德)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신정역주 이충무공전서 2권 38쪽-
난중일기에 정걸 장군은 조방장과 충청수사로 근무할 때 모두 12회 언급되었고 그 중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난중일기 1593년 6월 4일(갑신), 비가 종일토록 계속 내려 긴 밤이었다.
아침밥을 먹기 전에 순천부사(권준)가 왔다. 식후에 충청수사 정 영공[정걸]과 이홍명, 광양현감(어영담)이 와서 종일토록 군사 일을 이야기했다.
'이순신 흥양수군 800리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순신 흥양수군 800리길 10코스 (0) | 2026.02.02 |
|---|---|
| 이순신 흥양수군 800리길 9코스 (0) | 2026.01.27 |
| 이순신 흥양수군 800리길 7코스 (0) | 2026.01.27 |
| 이순신 흥양수군 800리길 6코스 (0) | 2026.01.27 |
| 이순신 흥양수군 800리길 5코스 (0) | 2026.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