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흥양수군 800리길

이순신 흥양수군 800리길 10코스

흥양수군 2026. 2. 2. 13:16

이순신 흥양수군 800리길 10코스

 

이순신 흥양수군 800리길 10코스는 나로대교준공기념탑을 출발하여 나로1대교, 동일면소재지, 사양도, 나로2대교를 거쳐 진기마을까지 16km이다.

이순신 흥양수군  800 리길  10 코스는 녹색부분으로서  16km 이다 .

10코스는 나로대교 준공기념탑을 출발하여 나로1대교를 건너면 내나로도인 동일면에 도착한다. 오른쪽 바다의 형제섬이 있는 해안 경관은 참 아름다운 곳이다. 특히 이곳의 해질녘 노을은 고흥의 자랑거리이다.

 

이어서 양화물막금길로 접어들어 섬 속의 간척지 농로길을 따라 4km 정도 걸으면 사양도로 가는 다리가 나타난다.

 

이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외나로도쪽 바다가 15989월 순천왜성전투에 출전한 조·명연합수군이 4일간 머물렀던 바다이다. 이름하여 임시삼도수군통제영이다. 사양도를 경유하여 나로2대교를 건너 오른쪽 산길로 가면 진기마을과 나로도항에 이른다.

 

 

10코스-1 나로도 임시 삼도수군통제영

나로도는 외내도로 이루어진 섬으로 사양도, 애도, 수락도 등 유인도와 형제도, 동백도 등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나로도의 역사는 조선시대 흥양현의 부속 도서였다가, 1896년 돌산군이 신설되면서 돌산군 봉래면이 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14년 부군폐합 시 다시 고흥군 봉래면이 되었다.

 

나로도는 동쪽 바다와 서쪽 바다를 이어주는 교량의 역할을 하였고, 거문도를 이어주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이런 이유로 왜구를 비롯한 해구의 침입이 잦았는데, 자료를 살펴보면 1442(세종 24) 815일 고도, 초도, 나로도에 왜인이 병기를 가지고 침입하여 발포천호 김정부에 의해 체포되었고, 1526(중종 21)에는 왜적들이 삼도에서 옷과 양식을 약탈한 후 나로도로 건너와서 약탈하다가 전라좌수영 수군에게 진압되었다.

 

1555(명종 10)에는 왜선 2척이 침입하여 전라좌수사 최종호에 의해 진압되었고, 이듬해 3월에는 평산포에서 10척의 왜선이 나로도에 침입하여 약탈을 자행하였다.

 

이렇듯 나로도는 조선 초기에 나로도보(羅老島堡)가 설치되어 만호가 지휘한 바 있었고, 통신시설이었던 봉수대는 총 4개가 있었는데, 봉래면 외초리의 봉래산봉수, 봉래면 신금리의 진터산봉수, 사양도봉수, 동일면 덕흥리 소포봉수가 있었다.

외나로도와 내나로도 사이 진터

위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1598915일 나로도에 도착하여 진을 친 곳은 바로 사양도와 애도(쑥섬), 외나로도, 내나로도의 중간이었다. 현재도 나로도항 북쪽 해안을 진터라고 부르며 이순신이 진을 쳤던 곳으로 구전되고 있다.

 

명연합수군의 선단은 외나로도 진기마을과 사양도, 내나로도 사이 바다에 주둔하였다. 그리고 방답진으로 출항하기 전 이곳에 진지를 구축할 것을 명령하고 진지를 비롯해 봉수대, 망루 등을 축조하였다.

 

조·명연합수군 예교성 출전도

 

명연합수군이 나로도에 머문 시기는 31일 동안 두 차례인데, 첫 번째는 고금도에서 예교성을 공격하기 위해 출발한 후인 1598915일부터 18일까지였고, 두 번째는 예교성 수륙합공전이 종료된 후 철수하여 15981012일에 나로도에 도착한 후부터 1598118일까지이다.

 

그럼 조명연합수군이 나로도에 유진하고 있을 때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첫째, 군량의 확보에 힘쓴 것으로 보인다. 선조실록에 등장하는 수로의 진 도독이 군량이 떨어졌다는 보고에서 볼 수 있듯이 조명연합수군에게 절실한 것은 군량이었다. 이순신은 난중일기에서 군량을 바치는 인물, 군량 종류, 수량의 기록 중에서 107일 송한련과 김태정의 기록이 나와 있다.

 

둘째는 순천 예교성에 있는 왜적의 섬멸을 위해 전투 작전을 구상하고 탐망으로 적정을 살폈다. 난중일기1598118일 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적들이 10일 사이에 도망할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하고 작전회의를 진행하기도 하였고, 통제사 이순신이 해구(海口)를 막아 순천 예교성으로부터 일본군의 출입을 원천봉쇄하고 있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셋째 수군에 있어 전선은 매우 중요했고, 전투 중 많이 망실되어 새로 건조하거나 수리가 필요했다. 흥양현은 1448(세종 30)23곳에서 송전으로 관리되고 있었는데 나로도에도 송전이 설치되어 관리되고 있었다.

 

나로도에 설치된 송전을 사도진에 환속시키라는 기사에서 송전의 설치가 확인된다. 이렇게 흥양에 산재한 송전의 존재는 조명연합수군의 전선 건조와 수리에 큰 도움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시 삼도수군 통제영이 있었던 나로도 진기마을 표지석

이렇듯 나로도 조명연합수군 임시주둔지는 정유재란의 막바지에 순천 예교성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명연합수군의 기지이며, 고금도에서 이진한 임시통제영이었다. 이곳에서 식량과 무기 등 후방지원과 조명연합수군(수로군)의 작전수립, 전선의 건조와 수리가 이루어졌다.

전투선을 정박했던 진기 앞 바다

 

난중일기에 나로도는 5회 언급되었고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순천왜성 전투와 노량해전 출전을 위해 임시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하였던 것으로 다음과 같다.

난중일기 1598915(정유) 맑음.

진 도독(陳都督, 진린)과 함께 일제히 군사를 움직여서 나로도(羅老島)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