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흥양수군 800리길

이순신 흥양수군 800리길 4코스

흥양수군 2026. 1. 27. 20:33

이순신 흥양수군 800리길 4코스
 
이순신 흥양수군 800리길 4코스는 도양장(道陽場)을 출발하여 장수마을, 소록도, 절이도해전승전탑을 경유하여 고라금해수욕장까지 18km이다.

이순신 흥양수군 800 리길 4 코스는 녹색부분으로서 18km 이다 .

4코스는 장수마을을 지나 오른쪽으로 득량만을 따라 도양해안로를 걷는다. 소록대교를 건너고 주차장을 가로질러 산길로 접어든다. 이곳 소록도 산길에서는 운이 좋으면 야생 꽃사슴을 볼 수 있다.
 
1km 정도 걸으면 한국에서 유일하게 ‘바다 위를 걷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거금대교 아래층을 걸으며 좌우에 펼쳐지는 녹동, 천등산, 거금도, 금당도, 멀리 장흥 천관산을 바라보며 걷는다.

거금대교 아랫층에서 바라본 상화도와 하화도


이어서 잊혀진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 절이도해전승전탑을 탐방하고 실제 절이도해전지를 바라볼 수 있는 고라금해수욕장에 도착한다.
 
 
4코스-1 절이도해전 승전탑
절이도 해전은 명 수군이 합류한 후 최초로 벌어진 해전이었고, 임진왜란 시기 흥양현 지역에서 있었던 유일한 해전이었다.
조선 수군은 금당도에서 함대를 결진하고 적의 야습에 대비하였다. 다음 날 7월 19일 동틀 무렵에 적선 1백여 척이 절이도 해상에 급습해 오자, 이순신은 진린의 명 수군으로 하여금 높은 곳에 올라 내려다보게 하였다. 그런 후 조선 수군은 이순신 지휘 하에 절이도 앞 해상의 적을 맞아 싸워서 적선 50여 척을 불태웠다.

절이도 해전 승전탑

 절이도해전은 명 수군이 참전한 후 최초로 있었던 연합해전이었으며, 조선 수군은 그동안 수군력 재건 결과를 시험한 무대이기도 했다.
 
명량해전 이후 13척에 불과했던 조선 수군은 고하도와 고금도에서 수군재건에 매진한 결과 60여 척의 전선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전력을 보유한 조선 수군이 조•명연합수군과 연합 후 맞닥뜨린 첫 번째 해전에서 대승리를 거둠으로써 이순신의 수군재건이 성공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절이도해전 승리는 앞으로 전개될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대적 자신감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줄 수 있다. 절이도해전에서의 일등공신은 녹도만호 송여종이다. 그는 관할구역인 절이도에서 복병한 후 적선을 분멸시키는 일에 가장 큰 공을 세웠으며, 적선 6척을 사로잡고 적의 수급 70여 급을 획득하였다.
 

진린(陳璘, 1543~1607)
진린은 명나라 광동 옹원 사람으로(『상촌집』에는 광동 라정주 동안현 사람), 자(字)는 조작, 호는 용애다. 명나라 세종 가정(1522~1566) 말엽에 지휘첨사(정4품)가 되었고, 신종 만력 20년(1592)에 도독첨사(정2품) 부총병관에 올랐다. 만력 25년(1597)에 광동병 5천을 거느리고 조선 지원에 나섰고, 다음해(1598)에는 마침내 어왜총병관에 올라 수로군 1만 3천 명을 지휘하였다.
 
조선 통제사 이순신과 연합 함대를 형성하여 노량 해전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다. 전후 명나라 논공에서 제1의 공로자로 인정받아 도독동지(종1품)로 승진하고, 후에 좌도독(정1품)에 올랐으며, 사후에 태자 태보로 추증하였다.

-신정역주 이충무공전서 2권 4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