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흥양수군 800리길

이순신 흥양수군 800리길 3코스

흥양수군 2026. 1. 27. 10:55

이순신 흥양수군 800리길 3코스

 

이순신 흥양수군 800리길 3코스는 썬밸리리조트 노을공원을 출발하여 용동마을, 한적마을 뒷산길, 우슬목장을 경유하여 도양장(道陽場)까지 16km이다.

이순신 흥양수군 800리길 3코스는 녹색부분으로 16km이다.

 

3코스는 용동마을을 지나 한적마을 뒤 산길로 접어든다. 이 산길은 우슬목장까지 4km 정도로 대부분 흙길로서 걷기에 적합하고 오른쪽으로는 득량만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매우 아름다운 길이다. 득량만은 임진왜란 당시 군량미를 얻었다는 뜻의 얻을 득, 식량량 득량(得糧)의 이름를 가지고 있다.

산길에서 내려다 본 득량만과 득량도

 

전쟁이 길어지면 제일 중요한 것이 군량미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부족한 군량미를 해결하기 위해 이곳 도양목장에 도양장(道陽場)이라는 둔전을 설치하여 큰 효과를 보았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서 군량미 생산에 관한 도양장(道陽場)12회 언급하였고 장계에서도 2회 기록하고 있다.

 

 

3코스-1 우슬목장

우슬목장은 도양목장의 속목장으로서 고흥군 가야리 성항마을 일대이다. 임진왜란 때 군량미를 생산하여 조선수군 전투력 향상에 큰 역할을 하였던 곳으로 추정된다.

 

 

3코스-2 도양장(道陽場)

도양장(道陽場)은 오늘날 도양읍과 도덕면 일대를 말하고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부족한 군량미를 생산하기 위해 설치한 둔전의 이름이다.

 

둔전은 군졸이나 서리, 평민 등에게 아직 개간하지 않는 땅을 개간하여 경작하게 하고 여기에서 나오는 수확물의 일부를 지방 관청의 경비나 군대의 양식으로 쓰도록 한 농장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중에 군량미 부족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을 때 군량미 확보의 새로운 정책으로 도양장 둔전 관련 장계를 2회 올렸고 난중일기에는 도양장(道陽場) 둔전 군량미 관련 기록이 12일 동안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면 ‘15951113(임신) 도양장(道陽場)에서 거둔 벼와 콩이 820섬이었다.’라는 내용이다. 군량미 생산량 뿐만아니라 군량미 생산에 필요한 씨앗(종자, 種子)에서부터 노동력을 절감해 주는 쟁기를 끄는 소, 지방관(흥양현감 홍유의)의 도양장(道陽場) 둔전 관리 노력 정도,

 

군량을 지원해 주는 지방 유지(계원유사 임영)의 활동, 추수철이면 군사를 동원했던 내용, 도양장(道陽場)에서 생산한 군량미를 한산도에서 각 부대에 공급했던 일, 군량미를 임의로 배급한 관리를 징계한 내용과 당시 우리나라 최고 책임자였던 이원익과 함께 직접 도양장(道陽場)을 시찰한 내용까지 기록되어 있다.

 

이순신 장군은 기아와 전염병을 극복하고 수군 전투력 향상을 위해 부족한 군량미 생산에 새로운 개념의 둔전 경영 아이디어를 창안하여 임금님께 장계도 올렸으며 윤허도 받아 다음과 같이 시행하였다.

 

둔전을 경영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노쇠하거나 부상 당한 군사들이 경작하는 방법이다.

 

둘째는 전쟁을 피해 떠돌아 다니는 유민을 모아서 경작하는 방법이 있었다.

이 두 가지는 관에서 농량(農糧), 종자(種子) 그리고 경우(耕牛)를 지급하였다.

 

셋째는 둔전을 백성에게 주어 병작하도록 하였다.

둔전을 설치하면서 백성을 단합시키고 험지에 웅거해 요해지를 지키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농사를 권장해 곡식을 비축할 수 있으며, 농사일의 여가에 장수를 정해 조련하면 정병(精兵)을 만들 수 있는 이득이 있었다.

 

또한 둔전을 둠으로 해서 도로가 통하고 백성들이 차츰 모여들며 생산되는 곡식의 증가 또한 기대할 수 있었다.

도양목장 감목관 철비

 

난중일기에 도양장(道陽場)은 모두 12회 언급되었고 그 중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난중일기 1595213(병진) 맑음.

일찍 대청에 나갔다. 도양(道陽)의 둔전(屯田)에서 벼 3백 섬을 실어 와서 각 포구에 나누어 주었다. 우수사(이억기)와 진도군수(박인룡), 무안현감, 함평현감(조발), 남도포만호(강응표), 마량첨사(강응호), 회령포만호(민정붕) 등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