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흥양수군 800리길

이순신 흥양수군 800리길 14코스

흥양수군 2026. 2. 2. 14:04

이순신 흥양수군 800리길 14코스
이순신 흥양수군 800리길 14코스는 우주 발사 전망대를 출발하여 미르마르길을 걷고 가수 남진기념관을 거쳐 곡강 제방길을 경유하여 점암면 여도진까지 17km이다.

이순신 흥양수군 800 리길 14 코스는 녹색부분으로서 17km 이다.

 
14코스는 우주발사전망대를 출발하여 미리마르길을 따라 아삭아삭 낙엽을 밟으며 걷노라면 오른쪽 아래에서는 바닷물이 출렁인다.
 
이어서 용암마을, 우암마을을 거쳐 가수 남진기념관에 이른다. 남진은 ‘님과 함께’, ‘미워도 다시 한번’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해 중장년들에게 친숙한 대한민국 대표 가수이다. 계속해서 해맞이로와 77번 국도를 따라 4.5km 정도 걷다 보면 곡강제방길에 이른다.
 
이어서 농로길을 걷고 방내마을을 경유하여 점암면 여호마을에 도착한다. 이곳이 여도진이다.
 
 
14코스–1 여도진(呂島鎭)
여도진은 1425년(세종 7) 2월에 순천 용문포에 있던 전라좌도 도만호진의 기능이 여도로 옮겨오면서 처음 설치되었다. 처음 설치 당시 여도진은 전라도수군처치사 휘하의 도만호진으로서 보성군 소속이었다.
 
그러나 여자만에 들어와 있어 상대적으로 왜구의 방어 기능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도만호진이 1427년(세종 9) 7월에 적이 다니는 요해지에 해당하는 사도진으로 옮겨가면서 여도진은 폐지되기에 이른다.
 
1439년(세종 21) 4월에 여도진의 중요성이 재인식되어 만호진으로 설치되었고 1441년(세종 23) 흥양현의 설치와 함께 흥양현 소속으로 바뀌게 되었다. 여도진은 1479년(세조 10) 1월에 내례진이 전라좌수영으로 승격되면서 전라좌수영 사도진관에 편제되었다.
 
이러한 편제는 여도진이 1895년 7월 공식적으로 폐지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여도진성은 1485년(성종 16) 3월에 그 규모가 결정되었다. 둘레 1,680척, 남북 길이 400척, 동서 너비 240척, 보 안의 샘이 한 곳이 있었다. 1491년(성종 22) 3월 말에 원래 계획했던 규모보다 360자 줄어든 성을 완공하였다. 높이가 15척, 둘레가 1,320척이었다.

여도진성 1

 
이순신 장군은 1592년 2월 19일 순천부사 권준과 함께 백야곶에 들러 말 목장 상태를 점검하고 이목구미에서 전선을 타고 여도진으로 건너갔다. 흥양현감 배흥립과 함께 지휘관인 권관 김인영으로부터 수군과 무기 상태를 보고받고 점검하였다.
 
이순신은 여도진의 점검을 마친 후 수군 상태는 물론이고 모든 무기와 전선 등을 새로 만들어 왜적의 칩입에 대비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고 칭찬하였다.
 
난중일기에 여도[呂島]는 5회 언급되었고 그 중 대표적인 난중일기는 다음과 같다.
난중일기 1592년 1월 18일(기묘) 맑음.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여도[呂島] 천자선이 돌아갔다. 우등계문과 대가단자를 봉하여 순찰사영으로 보냈다.
 
 
김인영(金仁英, 1543~?): 임진왜란 당시 여도진 만호
김인영의 자(字)는 덕부, 본관은 선산. 전라남도 보성(『무과방목』에서는 해남)에서 살았다. 총암 주의 후손이며 주부 견의 아들로, 1583년(선조 16) 41세에 무과에 합격하였다.
 
임진년(1592)에 여도권관(후에 만호)으로 좌수사 이순신의 척후장이 되어 해전마다 큰 공로를 세워 훈련부정(종3품)에 승진하였다. 그러나 같은 공로를 세운 다른 장수들이 정3품에 승진된 것과 다르므로, 이순신은 특별히 김인영의 승진 요청 장계를 올렸다.
 
그 결과 1595년 10월 통정대부(정3품)로 승진하였다. 후에 현감에 제수되었다.
 
난중일기에 여도만호 김인영은 27회 언급되었고 그 중 대표적인 난중일기는 다음과 같다.
난중일기 1594년 1월 25일(갑진) 흐리다가 늦게 맑았다.
송두남과 이상록 등이 새로 만든 배를 몰고 올 일로 사부와 격군 132명을 거느리고 갔다. 아침에 우수사우후[이정충]가 와서 아침을 함께 먹고 늦게 활을 쏘았다.
 
우수사우후와 여도만호[김인영]가 활쏘기를 겨루었는데, 여도[김인영]가 7분을 이겼다. 나는 10순을 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20순을 쏘았다. 저녁 때 종 허산이 술병을 훔치다가 붙잡혔기에 매를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