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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발포진의 설치와 운영

흥양수군 2026. 5. 7. 12:01

6. 발포진의 설치와 운영

1) 입지 및 설치 배경

고흥군 남쪽 도화면 발포리 성촌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은 비교적 높은 산들로 막혀있으나, 남쪽으로는 곧바로 큰 바다와 연결되는 위치를 점하고 있다. 발포진은 삼면으로 둘러싸고 있는 만의 가장 안쪽에 자리 잡은 천혜의 요새로서, 고흥의 남쪽 해상 방어에 있어서 반드시 지켜야 할 군사요충지였다. 이 같은 사실은 발포진 서쪽 5리 거리의 선소촌에 흥양현에서 별도로 운영하는 병선 정박처가 들어서 있었던 점이 잘 말해주고 있다.

 

발포진 주변 지형도(1917)


발포진 남쪽 해상은
1441(세종 23) 11월 고초도조어금약에 의해 조선 정부의 공식적인 어로권을 획득하여 고기잡이를 하는 왜인들의 어장이 있었다.

오동도와 그 밖의 5개 무인도 사이에는 영남과 호남의 조세선이 통과하는 수로가 형성되어 있고, 이 수로는 오지도와 죽도 사이를 거쳐 녹도진으로 이어지며 해상요충지를 이루고 있다.

 

2) 발포진의 설치와 운영

발포진은 1439(세종 21) 4월에 녹도진과 발포 사이에 있던 소흘라량진이 폐지되면서 설치된 것으로 확인된다. 1430년대 초반에 소흘라량진이 설치되면서 고흥군 남부의 풍안도화가화 등 3개 지역의 방어를 담당하게 되는데, 1435(세종 17) 7월에는 정식 만호진으로 개편된다. 그리고 이로부터 4년 후인 1439(세종 21) 4월 방어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소흘라량진은 폐지되고 발포진을 설치하여 운영한다.

발포진은 1457(세조 3) 대대적인 지방군 개편에 따라 전국이 일원적인 진관체제로 정비되고, 1479(성종 10) 1월에 내례포진이 전라좌수영으로 승격되면서 전라좌수영 사도진관(蛇島鎭管)에 편제되었다. 이러한 편제는 발포진이 18957월 공식적으로 폐지될 때까지 줄곧 유지되었다.

 

3) 발포진성 및 관아 시설

발포진성은 1485(성종 16) 3월에 그 규모가 결정되었다. 사도순찰사(四道巡察使) 홍응의 보고에 따르면 남향이고 둘레가 1,360, 동서 길이가 400, 남북 너비가 180, 높이가 13척이며 보 안의 샘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5년 반이 지난 1490(성종 21) 9월 말에 완공되었다.

 

전라좌도 흥양현 발포진지도(1872)


발포진성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36세 때인 1580(선조 13) 7월에 만호로 부임하여 재임하였고 1582(선조 15) 1월에 군기경차관 서익(徐益)에 의해 파직되었던 곳이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27호로 길이 560m, 높이 4m의 수군진성이다. 도제산(도제산) 남쪽 기슭을 일부 삭토하고 남쪽 바다에 면하도록 쌓은 평지성으로 평면형태는 서벽이 동벽보다 약간 긴 사다리꼴을 이룬다.

 

외벽은 돌로 쌓고, 내벽은 잡석과 흙을 다져 내탁식(內托式)으로 축조하고 있어 전형적인 조선시대의 축성기법을 따르고 있다.

발포진성에 딸린 부대시설 가운데 여장은 남아있지 않으며, 현재 확인 가능한 것은 동남문의 성문뿐이다.

성 밖에는 선창이 기록되어 있고, 선소는 원형의 돌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안에는 병선, 전선, 사후선이 묘사되어 있다. 선창과 관련하여 1705(숙종 31) 정월 당시 발포만호 이만대가 작년 8월로 임기가 만료되었으나, 선창의 축조가 끝날 때까지 유임시킨 사실이 있어 주목된다. 또한 1792(정조 18) 12월 발포만호 안덕항이 자신의 녹봉으로 새로운 물길을 만듦으로서 전선이 그 물길을 타고 돌아가서 정박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발포진성 주변도(1917)

 

남문밖 동쪽 해안에는 배의 정박과 수리를 위한 선소(굴강)가 현재도 잘 남아 전해지고 있다. 평면은 타원형으로 장축 46.8m, 단축 24m, 입구 폭 11.2m, 깊이 2m이다. 이 외에 마을 중앙에는 선정비 4기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