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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녹도진의 설치와 운영

흥양수군 2026. 5. 7. 11:46

5. 녹도진의 설치와 운영

1) 녹도진의 입지 및 설치 배경

고흥군 남서쪽 도양읍 봉암리에 위치하고 있다. 득량만 동쪽 입구에 위치하고 있어 서쪽 입구의 장흥 회령포진과 함께 고흥반도를 비롯하여 장흥과 보성지역의 방어에 있어서 반드시 지켜야 할 군사적 요충지이다. 만의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다른 수군진과는 달리, 바다쪽으로 내민 지형에 자리 잡고 있어 밖으로 노출되어 있고, 남쪽 해상의 소록도가 동서로 길게 놓여 있어 녹도진성이 드러나지 않도록 은폐해 주고 있다.

 

녹도진 주변 지형도(1917)


녹도진은 지리적인 입지조건으로 인해 전라도 지역에 침입하는 왜구들의 두 개 경로 모두에 노출되어 있었을 뿐만아니라 고초도조어금약에 의해 고기잡이를 하던 고초도 지역까지를 방어구역으로 하였다
. 또한 녹도진 바로 남쪽 바다에는 말을 키우는 국영목장이 설치되어 있던 절이도(折爾島, 현 거금도)가 위치하고, 절이도와 무인도로 기록된 상하화도 사이의 수로는 영남과 호남의 조세선이 통과하는 해상 요충지였다.

 

2) 녹도진의 설치와 운영

녹도진이 언제 처음 설치되었는지 직접 전하고 있는 문헌은 확인되지 않는다. 조선시대 공식기록으로 가장 믿을만한 조선왕조실록에는 1406(태종 6) 4월 중순의 기록에서 녹도천호(鹿島千戶)의 존재가 처음 나타난다.

보다 체계적이고 정비된 녹도진의 모습은 세종실록지리지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이때 녹도진은 내례돌산축두회령포마도달량어란과 함께 전라도 수군처치사 휘하의 여도(呂島) 전라좌도 도만호진에 속한 만호진으로서 행정체계상으로는 장흥도호부 소속이었다. 그 후 1441(세종 23) 흥양현의 설치와 함께 흥양현 소속으로 바뀌게 되었고, 1457(세조 3) 1월 고흥포에 있던 축두진(築頭鎭)이 폐지됨에 따라 그 선군을 발포진과 함께 물려받았다.

녹도진은 1457(세조 3) 대대적인 지방군제 개편에 따라 전국이 일원적인 진관체제(鎭管體制)로 정비되었고, 1479(성종 10) 1월에 내례포진이 전라좌수영으로 승격되면서 전라좌수영 사도진관(蛇島鎭管)에 편제되었다. 이러한 편제는 녹도진이 18957월 공식적으로 폐지될 때까지 줄곧 유지되었다.

 

3) 녹도진성 및 관아시설

녹도진성은 1485(성종 16) 3월에 그 규모가 결정되었다. 사도순찰사(四道巡察使) 홍응의 보고에 따르면 남향이고 둘레가 2,020, 동서 길이가 810, 남북 너비가 44, 높이가 13척이며 보 안의 샘이 두 개가 있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5년 반이 지난 1490(성종 20) 10월 말에 완공되었다.

 

전라좌도 흥양현 녹도진지도(1872)


녹도진성은 해발
158.7m의 북쪽의 비교적 낮은 산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뻗은 능선이 동쪽과 서쪽으로 이어진 가운데 해안가의 남쪽 평지를 연결하여 쌓은 평산성으로 평면 형태는 반원형에 가깝다. 외벽은 돌로 쌓고, 내벽은 잡석과 흙을 다져 내탁식(內托式)으로 축조하고 있어 전형적인 조선시대의 축성기법을 따르고 있다. 현재 북문지에 가까운 서벽구간으로 외벽의 높이는 약 2m 4단 정도가 남아있고, 북쪽 구간 가운데 32m 정도가 남아있다. 봉암리 2738-15번지 일대로 주변은 주택이 들어서고 경작지로 사용되고 있다.

 

녹도진성 주변도(1917)


그리고 동문지
(봉암리 2094번지), 서문지(봉암리 2154.2737번지), 남문지(봉암리 2181번지), 북문지(봉암리 2438번지) 위치가 확인되었고 녹도진과 관련된 불망비 3기가 쌍충사 입구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