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여도진의 설치와 운영
1) 입지 및 설치 배경
고흥군 동쪽의 점암면 여호리에 위치하고 있다. 여자만 안의 1/3 정도 들어간 지점으로 목이 좁은 지형이 북쪽으로 돌출한 부분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때문에 다른 수군진과는 달리 북쪽의 원주도를 배경으로 남쪽에는 해발 102m의 남산이 자리 잡고 있다. 남산 서쪽 봉우리에는 여도진 소속의 요망대가 설치되어 있어서 여자만 해역을 감시하여 이상 유무를 신속하게 여도진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여도진은 여자만을 통해 순천도호부와 낙안군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입지해 있고 영남과 호남의 조운선이 통과하는 해상 요충지로서 고흥을 외호(外護)하는 기능과 함께 순천•낙안지역의 방어에 있어서도 반드시 지켜야할 군사 요충지였다.

2) 여도진의 설치와 운영
여도진은 전라도 수군진의 정비 과정에서 설치와 폐지를 반복하였고 1425년(세종 7) 2월에 순천 용문포에 있던 전라좌도 도만호진의 기능이 여도로 옮겨오면서 처음 설치되었다. 전라좌도 중앙에 위치한 지리적인 입지와 순천도호부 및 낙안군의 방어 등을 고려한 결과였다. 처음 설치 당시 여도진은 전라 좌도의 내례•돌산•축두•녹도•회령포•마도•달량•어란을 거느리던 전라도수군처치사 휘하의 도만호진으로서 행정 체계상으로는 보성군 소속이었다. 그러나 여자만에 들어와 있어 상대적으로 왜구의 방어 기능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2년 반 정도가 지난 1427년(세종 9) 7월에 적이 다니는 요해지에 해당하는 사도진으로 옮겨가면서 여도진은 폐지되기에 이른다. 1439년(세종 21) 4월에 여도진의 중요성이 재인식되어 만호진으로 설치되었고 1441년(세종 23) 흥양현의 설치와 함께 흥양현 소속으로 바뀌게 되었다. 여도진은 1457년(세조 3) 대대적인 지방군제 개편에 따라 전국이 일원적인 진관체제로 정비되고 1479년(세조 10) 1월에 내례진이 전라좌수영으로 승격되면서 돌산포•발포•녹도•회령포와 함께 전라좌수영 사도진관에 편제되었다. 이러한 편제는 여도진이 1895년 7월 공식적으로 폐지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3) 여도진성 및 관아시설
여도진은 1485년(성종 16) 3월에 그 규모가 결정되었다. 둘레 1,680척, 남북 길이 400척, 동서 너비 240척, 보 안의 샘이 한 곳이 있었다.
1491년(성종 22) 3월 말에 원래 계획했던 규모보다 360자 줄어든 성을 완공하였다. 높이가 15척, 둘레가 1,320척이었다.

여도진은 전라남도기념물 155호로 여호마을 동쪽으로 돌출한 구릉 상에 자리 잡고 있고 평면 형태는 삼각형에 가까운 부정형을 이루며, 외벽은 돌로 쌓고 내벽은 잡석과 흙을 다져 내탁식으로 축조하여 전형적인 조선시대의 축성기법을 따르고 있다.

여도진지도(1917)
현재는 동벽 구간에 높이 1~1.5m 가량의 성벽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흔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파괴된 상태이다. 현재 확인 가능한 것은 남문과 북문의 성문으로 남문 앞에는 반달 모양 옹성의 흔적 일부가 남아있고 북문은 폭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뚜렷한 흔적이 남아있다. 여도진의 선소는 남쪽에 두고 있는 다른 수군진의 경우와 달리 북문 아래에 두고 있다.